라쉬 - 레위기 1장
파라샤트 바이크라(레 1:1 - 5:26)
1 하쉠께서 모쉐를 부르시고 회막에서 말씀하셨다.
- (하쉠께서) 모쉐를 부르시고(וַיִּקְרָא אֶל־משֶׁה): 하나님께서 모세와 소통하신 모든 형태의 계시—말씀하심(וַיְדַבֵּר)이든, 이르심(וַיֹאמֶר)이든, 혹은 명령하심(צַו)이든—그 모든 것은 먼저 부르심(קְרִיאָה)이 선행되었다. 이 קְרִיאָה(부르심)은 사랑이 담긴 방식으로, 섬기는 천사들끼리도 서로를 부를 때 사용하는 방식이다. 이와 관련하여 성경에는 “한 천사가 다른 천사에게 불러 이르되(וְקָרָא אֶל זֶה וְאָמַר)…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사 6:3))라고 기록되어 있다. 반면, 이방 민족의 예언자들에게는, 하나님께서 일시적이며 부정함을 내포하는 방식으로 자신을 나타내셨다. 예를 들어 “하나님께서 발람에게 우연히 나타나셨다”(וַיִּקָּר אֱלֹהִים אֶל בִּלְעָם)(민 23:4)는 표현에서 볼 수 있듯이, 여기서 사용된 וַיִּקָּר는 우연함이나 비정결함의 뉘앙스를 지닌다.
- (하쉠께서) 모쉐를 부르시고(וַיִּקְרָא אֶל־משֶׁה): 이것은 하나님의 음성이 나와 오직 모세의 귀에만 들렸고, 다른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것을 들을 수 없었음을 나타낸다. 나는 혹시 단락이 나뉘는 지점마다 따로 부르심이 있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성경은 “וַיְדַבֵּר”(그가 말씀하셨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이는 ‘말씀하심’에는 반드시 부르심(קְרִיאָה)이 선행되었지만, 단락 구분 자체에는 부르심에 따르지 않았음을 뜻한다. 그렇다면, 단락 구분의 목적이 단순한 애정 표현만은 아니라면 무엇인가? 그것은 모세가 한 단락과 다음 단락 사이, 하나의 주제와 다음 주제 사이에서 깊이 숙고할 시간을 갖도록 하기 위함이다. 이를 통해 우리는 더욱 큰 교훈을 얻는다. 모세가 하나님께 직접 배울 때에도 숙고할 시간이 주어졌다면, 보통 사람이 다른 보통 사람에게서 배울 때에는 더욱더 그러해야 한다는 것이다.
- 그에게(אֵלָיו): 이 구절은 아론을 배제함을 나타내기 위해 덧붙여진 것이다. 랍비 여후다 벤 베테이라는 이렇게 말하였다. 토라에서 모세와 아론 둘 모두에게 주어진 것으로 언급된 하나님의 계시는 총 열세 번이며, 이에 상응하여 열세 개의 제한 표현이 기록되어 있다. 이는 이 열세 번의 계시가 실제로는 아론에게 주어진 것이 아니라, 오직 모세에게만 주어졌으며, 그 내용을 모세가 아론에게 전달하도록 의도되었음을 가르치기 위함이다. 다음은 그 열세 개의 제한 표현들이다: לְדַבֵּר אִתּוֹ – “하나님께서 그와 말씀하시기 위해 모세가 회막에 들어갔다”(민 7:89) מִדַּבֵּר אֵלָיו – “그가 듣는 음성은 자기 자신에게 말하는 듯 들렸으며, 이는 모세가 듣도록 하기 위함이었다”(ibid.) וַיְדַבֵּר אֵלָיו – “그분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ibid.) וְנוֹעַדְתִּי לְךָ – “내가 너와 만날 것이다”(출 25:22) 등등. 이 모든 표현은 토라트 코하님(Torat Kohanim 2:1)에 나열되어 있다. 나는 혹시라도 다른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부르심의 소리만큼은 들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성경은 “그에게만”(קוֹל לוֹ)라고 하지 않고, “그에게 들리는 음성”(קוֹל אֵלָיו)라고 표현하고한다. 이로부터 우리는 하나님의 음성이 오직 모세에게만 들렸고, 다른 이스라엘 백성들은 전혀 듣지 못하였음을 알 수 있다.
- 회막에서(מֵאֹהֶל מוֹעֵד): 이 구절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음성이 회막 너머로는 퍼지지 않았음을 가르쳐 준다. 나는 혹시 그것이 음성이 작았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할 수 있으나, 성경은 “모세가 그 음성(אֶת הַקּוֹל)을 들었다”(민 7:89) 기록하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הַקּוֹל(그 음성)은 시편에 묘사된 바와 같은 위력 있고 장엄한 하나님의 음성, 곧 “하쉠의 음성은 권능이 있고, 하쉠의 음성은 위엄이 있으며, 하쉠의 음성은 백향목을 꺾는다”(시 29:4-5)라는 구절의 음성을 가리킨다. 그렇다면, 왜 “회막에서”(מֵאֹהֶל מוֹעֵד)라고 말하고 있는가? 이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음성이 회막 입구에서 기적적으로 멈췄음을 가르쳐 주기 위함이다. 이와 유사한 표현이 다른 곳에서도 나타난다. 예컨대 “그룹들의 날개 소리가 바깥뜰까지 들렸다”(겔 10:5)는 구절이 있다. 나는 이 소리도 작았기 때문에 그런 줄 생각할 수 있으나, 성경은 곧이어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실 때의 음성 같았다”고 덧붙인다. 그렇다면 왜 “바깥뜰까지 들렸다”고 말하는가? 이는 그 소리가 그 지점에 이르면 멈추었음을 나타내기 위함이다.
- 회막에서 말씀하셨다(מֵאֹהֶל מוֹעֵד לֵאמֹֽר): 나는 혹시 하나님의 음성이 회막 전체에서 나왔다는 의미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성경은 명확히 말하기를, “속죄판 위에서부터”(מֵעַל הַכַּפֹּרֶת)(민 7:89)라고 한다. 그렇다면 나는 또다시 속죄판 전체 위에서 나왔다는 뜻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성경은 곧 이어 “두 그룹 사이에서부터”(מִבֵּין שְׁנֵי הַכְּרֻבִים)라고 밝히고 있다.
- 말씀하셨다(לֵאמֹֽר): 이 표현은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 것을 나타낸다: “가서 그들에게 감동적인 말을 전하라. ‘그분께서 나와 말씀하시는 것은 너희를 위한 것이다.’” 이는 우리가 정탐꾼 사건 이후의 38년 동안, 이스라엘 백성이 마치 하나님의 외면을 받은 자들처럼 대우받았던 그 시기에는, 모세에게 친밀한 방식의 계시가 없었음을 통해 알 수 있다. 성경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 군인들이 다 죽은 후에야… 하쉠께서 내게 말씀하셨다”(신 2:16-17)—곧, 그제서야 하나님의 말씀이 모세에게 친밀한 방식으로 임한 것이다. לֵאמֹר에 대한 또 다른 해석은 다음과 같다: “가서 내 말을 그들에게 전하고, 그들이 받아들이는지 여부를 내게 보고하라.” 이는 이전에 기록된 바와 같은 방식으로, “모세가 백성의 말을 하나님께 다시 전하였다”(출 19:8)고 한 구절과도 일치한다.
2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라. 너희 중에 하쉠께 제물을 가져오는 사람은 가축, 곧 소 떼나 작은 가축 떼 중에서 너희 제물을 가져와야 한다.
- 너희 중에…가져오는 사람(אָדָם כִּי־יַקְרִיב מִכֶּם): 즉, 그가 원할 경우에 바치는 것을 의미한다. 이 구절은 자원제물(נדבה)에 관한 내용을 다룬 것이다.
- 사람은(אָדָם): 왜 여기에서 ‘אָדָם‘(사람)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는가? 이는 우리에게 다음을 가르친다. - 처음 사람(아담)은 세상의 모든 것이 그의 것이었기에 결코 도둑질한 재산으로 제물을 드릴 수 없었듯이, 너희 또한 도둑질한 동물로는 어떤 제물도 바칠 수 없다는 것이다.
- 가축(הַבְּהֵמָה): 나는 혹시 들짐승(야생 동물)도 포함되는 줄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히 “소와 양떼”(בָּקָר וְצֹאן)라고 명시하고 있다.
- 가축…중에서(מִן־הַבְּהֵמָה): 이는 모든 짐승이 해당되는 것은 아님을 나타낸다. 이는 수간(짐승과의 부적절한 관계)에 능동적으로나 수동적으로 관여한 짐승은 제외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 소 떼(מִן־הַבָּקָר): 이 제한은 우상으로 숭배된 짐승을 제외하기 위해 명시된 것이다.
- 작은 가축 떼(מִן־הַצֹּאן): 이 제한은 우상 숭배에 바치기로 정해진 짐승을 제외하기 위해 명시된 것이다.
- 작은 가축 떼(מִן־הַצֹּאן): 추가된 ‘ו’(그리고)는 사람을 들이받아 죽인 짐승을 제외하기 위해 삽입된 것이다. 또한 다음 절에서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되는 “מִן הַבָּקָר”(소 중에서)라는 표현이 등장하는데, 이는 치명적인 흠이 있는 짐승을 제외하기 위함이다.
- 너희는…가져와야 한다(תַּקְרִיבוּ): 복수형 표현은 두 사람 이상이 자원 올림제물(번제)를 공동으로 바칠 수 있음을 가르쳐 준다.
- 너희 제물을(קָרְבַּנְכֶֽם): ‘קָרְבָּן’(제물)이라는 표현이 반복된 것은 올림제물이 개인뿐 아니라 공동자원제물로 바쳐질 수 있음을 가르쳐준다. 이는 특히 ‘제단의 후식‘(תַּדְשִׁין לַמִּזְבֵּחַ)이라 불리는 제사를 가리키며, 다른 제물이 드려지지 않을 때에도 제단의 활동을 지속시키기 위해 바쳐지는 번제이다. 이 제물은 공동제사를 위한 성소 세켈의 남은 금액으로부터 가져와 드려진다.
3 만일 그의 제물이 소 떼 중에서 가져오는 올림제물이면 흠 없는 수컷으로 가져와야 한다. 하쉠 앞에 그 올림제물이 기쁘게 받아들여지도록 그는 회막 입구로 그것을 가져와서
- 수컷(זָכָר): 수컷(זָכָר)이라는 표현은 암컷은 해당되지 않음을 가르쳐준다. 그리고 아래에서 다시 한 번 ‘수컷’이라고 반복하여 말한 것(레 1:10)은 굳이 필요하지 않아 보이지만, 이는 제물은 반드시 수컷이어야 하며, 성별이 불분명한 짐승이나 양성 짐승은 제외됨을 가르치기 위함이다.
- 흠 없는(תָּמִים): 흠 없는 상태
- 회막 입구로(אֶל־פֶּתַח אֹהֶל מוֹעֵד): 즉, 그는 그 제물을 성막 뜰 입구까지 인도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그런데 왜 ‘יַקְרִיב’(그가 바쳐야 한다)라는 표현이 두 번 반복되어 있는가? 이는 다음과 같은 가르침을 전하기 위함이다. 만약 르우벤의 올림제물이 시므온의 것과 섞였을 경우, 각 사람은 그 짐승들 중 하나씩 (실제 주인인 누구이든) 그를 위한 의도로 바치게 된다. 이와 유사하게, 만약 번제물이 일반 짐승들과 섞였을 경우, 그 일반 짐승들은 번제가 필요한 자들에게 팔리고, 그 결과 모든 짐승이 번제로 성별되며, 각 짐승은 그것을 지정했던 사람의 의도를 따라 바쳐지게 된다. 나는 혹시라도 이러한 방식이, 제물과 제물로 부적합한 짐승 혹은 다른 종류의 제물과 섞였을 경우에도 해당될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성경은 ‘יַקְרִיבֶנּוּ’(그는 그것을 바쳐야 한다)라고 분명히 말하고 있다. 이는 오직 제물로 합당한 경우에만 해당되며, 다른 제물 종류나 부적합한 짐승과 섞였을 경우에는 이 원칙이 적용되지 않음을 가르쳐준다.
- 그것을 가져와서: ‘אֹתוֹ”(그것을)’라는 단어가 추가된 것은, 그가 서원한 제물을 반드시 바치도록 법정이 강제할 수 있음을 가르쳐준다. 나는 혹시 이것이 그의 의사와 상관없이 억지로 강제로 바치게 한다는 뜻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성경은 곧이어 ‘לִרְצֹנוֹ’(자원하여)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이것이 어떻게 가능한가? 그가 “내가 자원합니다”라고 말할 때까지 압박을 가하는 방식이다.
- 하쉠 앞에…손을 얹어야 한다(לִפְנֵי ה' וסמך): 이 단어들이 서로 인접하게 기록된 것은, 사람이 개인 제단에서 제물을 바칠 때는 안수(סְמִיכָה)를 하지 않는다는 것을 가르쳐주기 위함이다.
4 그 올림제물의 머리 위에 그의 손을 얹어야 한다. 그러면 그것이 그를 위한 속죄로 기쁘게 받아들여질 것이다.
- 올림제물의 머리 위에(עַל רֹאשׁ הָֽעֹלָה): 여기에서 עֹלָה”(올림제물)라는 단어가 반복된 것은, 의무적으로 드리는 올림제물조차도 안수를 필요로 함을 포함시키기 위함이며, 또한 양(작은 가축) 떼 중에서 드리는 번제도 안수를 필요로 함을 포함시키기 위함이다.
- 올림제물(הָֽעֹלָה): 정관사 ‘ה(the)’가 사용된 것은 (날개 달린) 새로 드리는 번제(עֹלַת הָעוֹף)는 안수 절차에서 제외됨을 나타내기 위함이다.
- 기쁘게 받아들여지도록(וְנִרְצָה לוֹ): 그렇다면 이 올림제가 어떤 죄에 대해 속죄하고, 그 사람을 다시 받아들여지게 하는가? 만일 누군가 말하길, 그것이 끊어지는 죄(כָּרֵת), 재판에 의한 사형, 신성한 행위에 의한 사형, 혹은 채찍형에 대한 속죄라고 한다면, 그러한 죄들에 대해서는 그에 상응하는 처벌 방식이 이미 명확히 규정되어 있으므로 이 올리제의 속죄에 해당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음과 같이 결론지어야 한다 — 이는 능동적 계명을 이행하지 않은 경우 또는 금지 계명을 어겼으나, 어떤 능동적 계명의 행함으로 보완할 수 있는 경우에 대해 속죄로써 받아들여짐을 가능하게 한다.
5 그리고 그는, 하쉠 앞에서 수송아지를 잡고, 아하론의 아들들인 그 제사장들이 그 피를 취해 회막 입구에 있는 제단 주위에 뿌려야 한다.
- 그는,…잡고…제사장들이…뿌려야 한다(וְשָׁחַט וְהִקְרִיבוּ הַכֹּֽהֲנִים): 이로부터 우리는 도살 후 피를 받는 단계(קַבָּלָה)부터가 제사장에게만 허용된 업무임을 유추할 수 있다. 이는 곧, 도살 행위 자체는 제사장이 아닌 사람에 의해 수행되어도 유효함을 가르쳐준다.
- 하쉠 앞에서: 즉 성막 뜰 안에서
- (피를) 취해(וְהִקְרִיבוּ): 이 구절은 피를 받는 행위(קַבָּלָה)를 가리키는 것이 분명하다. 이는 도살 직후 행해지는 첫 번째 절차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본문의 문자적 의미는 피를 제단까지 가져가는 것(הוֹלָכָה)을 나타낸다. 따라서 우리는 이로부터 다음을 배운다. 두 행위 모두 아론의 아들들, 즉 제사장들에 의해 수행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 아하론의 아들들(בְּנֵי אַֽהֲרֹן): 나는 혹시 이것이 자격을 조건이 박탈된 제사장들(חֲלָלִים)도 포함하는 줄 생각할 수 있다(레 21:7, 13-15). 그러나 성경은 ‘הַכֹּהֲנִים’(그 제사장들)이라고 명확히 말하고 있으므로, 이는 완전한 제사장 자격을 가진 자들만이 해당됨을 나타낸다.
- 그 피를…뿌려야 한다(אֶת־הַדָּם וְזָֽרְקוּ אֶת־הַדָּם): 성경이 ‘דָּם’(피)이라는 단어를 두 번 사용하는 이유는, 같은 종류의 제물의 피끼리 섞였을 경우뿐 아니라, 다른 종류의 제물의 피와 섞였을 경우도 포함시키기 위함이다. 그러나 나는 혹시 이것이 부적합한 제물의 피와 섞였거나, 성소 안에 뿌리는 속죄제의 피, 또는 성소 밖에서 뿌리지만 제단의 윗부분에 뿌려야 하는 속죄제의 피와 섞였을 경우에도 해당된다고 생각할 수 있다. 왜냐하면 올림제물의 피는 제단의 아랫부분에 뿌려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경은 다른 곳에서 ‘אֶת דָּמוֹ’(그 피)라고 명시함으로써, 이 경우는 제외한다.
- 뿌려야 한다(וְזָֽרְקוּ): 즉, 제사장은 뜰 바닥에 서서, 피를 담은 그릇에서 제단 벽 쪽으로, 붉은 경계선 아래, 제단의 모서리를 향해 피를 뿌린다. 이때 성경에서 ‘סָבִיב’(사방으로, 둘레로)라고 표현한 이유는, 피를 제단의 네 면에 놓아야 함을 나타내기 위함이다. 그러나 나는 혹시 이것이 피를 실처럼 이어지는 끊김 없는 선으로 제단 둘레에 둘러야 한다는 뜻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성경은 ‘וְזָרְקוּ’(뿌릴지니라)라고 말한다. 피를 뿌리는 방식으로는 실처럼 이어진 둘레를 만들 수 없기 때문에, 이는 그러한 의미가 아님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나는 다시, 한 번의 뿌림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생각할 수 있지만, 성경은 다시 ‘סָבִיב’(사방으로)라고 강조한다. 결론적으로 이것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피를 두 번 뿌리되, 그것이 제단의 네 면에 보이도록 하는 것이다.
- 회막 입구에: 그러나 이는 성막이 해체되어 있는 동안에는 해당되지 않는다.
6 그리고 그는 그 올림제물의 가죽을 벗기고 각을 떠야 한다.
- 그는 그 올림제물의 가죽을 벗기고(וְהִפְשִׁיט וגו): 성경이 다시 한 번 ‘הָעֹלָה’(그 올림제물)이라고 언급한 이유는, 모든 종류의 번제물이 반드시 가죽을 벗기고 토막 내는 절차를 거쳐야 함을 포함시키기 위함이다.
- 각을 떠야 한다(אֹתָהּ לִנְתָחֶֽיהָ): (이는 제물의 주요 부위를 나누라는 뜻이지) 그 부위들을 더 작은 조각으로 잘게 자르라는 의미는 아니다.
7 아하론의 아들들인 그 제사장은 제단 위에 불을 피우고, 그 불 위에 나무들을 진열해야 한다.
- 불을 피우고(וְנָֽתְנוּ…אֵשׁ): 하늘에서 불이 내려오더라도, 사람이 평소처럼 불을 가져오는 것은 여전히 의무이다.
- 아하론의 아들들인 그 제사장: ‘הַכֹּהֵן’(그 제사장)이라는 표현이 추가된 것은, 대제사장이 자신의 고유한 제사장적 상태로 봉사할 때만 그 봉사가 유효함을 가르쳐준다. 만약 그가 일반 제사장이 입는 네 가지 의복만 입고 봉사했다면, 그의 봉사는 무효이다.
8 그리고 아하론의 아들들인 그 제사장들은 그 각들을 머리와 기름과 함께 제단의 불 위에 있는 나무들 위에 진열해야 한다.
- 아하론의 아들들인 그 제사장(אֵת הַנְּתָחִים אֶת־הָרֹאשׁ): ‘הַכֹּהֲנִים’(그 제사장들)이라는 표현이 추가된 것은, 일반 제사장이 제사장으로서의 고유한 상태로 봉사할 때만 그 봉사가 유효함을 가르쳐준다. 만약 일반 제사장이 대제사장의 여덟 가지 의복을 입고 봉사했다면, 그의 봉사는 무효이다.
- 그 각들을 머리와…(אֵת הַנְּתָחִים אֶת־הָרֹאשׁ): 머리는 가죽을 벗기는 절차에 포함되지 않는데, 이는 도살할 때 이미 잘려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머리도 제단 위에 올려지는 부위 중 하나로 포함된다는 점을 명확히 하기 위해, 성경에서 별도로 언급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 기름과(וְאֶת־הַפָּדֶר): 왜 이 부분이 특별히 언급되었는가? 이는 그것이 머리와 함께 제단 위로 올라가야 하며, 그것으로 도살한 자리를 덮어, 높이 계신 분께 존엄한(단정한) 모습으로 제물을 바치기 위함임을 가르치기 위해서이다.
- 제단의…위(אֲשֶׁר עַל־הַמִּזְבֵּֽחַ): 이는 장작더미에서 나무 조각들이 밖으로 튀어나오지 않도록 해야 함을 가르쳐준다.
9 그리고 내장과 양쪽 다리를 물에 씻어 놓으면 그 제사장은 그 모두를 제단에서 태워야 한다. 그것이 올림제니 하쉠께 기쁜 향기인 사르는 제사다.
- 올림제(עֹלָה): 즉, 그는 그 제물을 올림제물(עֹלָה)로 바치겠다는 의도를 가지고 불살라야 한다는 의미이다.
- 사르는 제사(אִשֵּׁה): 즉, 그가 제물을 도살할 때, 그것이 불에 의해 소비될 올림제물이 되도록 의도를 가지고 도살해야 한다는 것이다. ‘אִשֶּׁה’라는 표현은 모든 경우에 불을 의미하며, 이는 고대 프랑스어로 ‘foede’라고 한다.
- 기쁜(נִיחוֹחַ): 즉, “내가 이것이 시행되도록 명령하였고, 나의 뜻이 이루어졌다는 사실이 나를 기쁘게 한다”는 의미이다.
10 만일 올림제를 위한 제물이 작은 가축, 곧 어린양과 염소 중에서면 흠 없는 수컷으로 가져와서
- 작은 가축…중에서면(וְאִם־מִן־הַצֹּאן): 접두사 ‘ו’(그리고)는 이 구절이 이전 주제의 연속임을 나타낸다. 그렇다면 왜 여기에서 단락 구분이 있는가? 이는 모세가 한 구절과 다음 구절 사이에서 숙고할 시간을 갖도록 하기 위함이다.
- 어린양과 염소 중에서면(מִן־הַצֹּאן מִן־הַכְּשָׂבִים מִן־הָֽעִזִּים): מִן(~중에서)이라는 단어가 세 번 반복된 것은 세 가지 제한을 나타내며, 이는 늙고, 병들고, (냄새나는) 더러운 짐승은 제물로 바칠 수 없음을 제외하기 위해서이다.
11 제단 북쪽, 하쉠 앞에서 잡아야 한다. 그리고 아하론의 아들들인 그 제사장들이 제단 주위에 그 피를 뿌려야 한다.
- 제단…쪽(עַל יֶרֶךְ הַמִּזְבֵּחַ): ‘제단의 옆면에’라는 의미이다.
- 북쪽, 하쉠 앞에서(צָפֹנָה לִפְנֵי ה'): 그러나 개인 제단에서 제물을 바칠 때에는 북쪽에서 도살해야 한다는 요구가 없다.
12 그리고 그 머리와 기름과 함께 각을 떠 놓으면 그 제사장은 그것들을 제단의 불 위에 있는 나무들 위에 진열해야 한다.
13 그리고 내장과 양쪽 다리를 물에 씻어 놓으면 그 제사장은 그 모두를 가져와서 제단에서 태워야 한다. 그것이 올림제니 하쉠께 기쁜 향기인 사르는 제사다.
14 만일 하쉠를 취한 그의 올림제물이 새 중에서면 그는 산비둘기나 집비둘기 새끼 중에서 그의 제물을 가져와야 한다.
- 새 중에서(מִן־הָעוֹף): 그러나 모든 새가 제물로 적합한 것은 아니다. 성경에서 ‘소나 양이나 염소 중에서 흠 없는 수컷’(레 22:19)이라고 말한 것을 보면, 가축 제물은 반드시 흠이 없고 수컷이어야 한다는 요건이 있는 반면, 새의 경우에는 그런 요건이 명시되어 있지 않다. 따라서 나는 혹시라도 지체가 없는 새조차도 제물로 바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성경은 ‘מִן הָעוֹף’(새 중에서)라고 말하며, 이는 모든 새가 해당되는 것이 아님을 나타낸다.
- 산비둘기나(תֹּרִים): 즉, 어린 새가 아니라 다 자란 새를 말한다.
- 집비둘기 새끼(בְּנֵי יונה): 즉, 다 자란 새가 아니라 어린 새를 말한다.
- 산비둘기나 집비둘기 새끼 중에서: ‘מִן’(~중에서)이라는 제한어는 두 종류의 새(산비둘기와 집비둘기) 중 어느 쪽이든 깃털이 누렇게 바뀌기 시작하는 초기 단계에 있는 새를 제외하기 위한 것이다. 이 단계의 새는 산비둘기 중에서는 너무 어리고, 집비둘기 중에서는 너무 성숙한 것으로 간주되므로, 제물로 바치기에 부적합하다.
15 그 제사장은 제단에 그것을 가져와 머리를 비틀고, 제단에서 태워야 한다. 그리고 그 피는 제단 벽에 부어져야 한다.
- 그 제사장은…가져와(וְהִקְרִיבוֹ): 즉, 새 한 마리만으로도 제물로 바칠 수 있다는 의미이다.
- (머리를) 비틀고(הַכֹּהֵן וּמָלַק): 이는 제사장이 도구를 사용하지 않고 직접 머리를 비틀어 끊는 방식으로 행한다는 것을 가르쳐준다. 그는 자신의 손톱으로 새의 목 뒤쪽을 자르며, 목뼈를 통과해 식도와 기관(시마님, סימנים)에 도달한 후 그것들을 끊는다.
- 그 피는…부어져야 한다(וְנִמְצָה דָמוֹ): ‘נִמְצָה’라는 단어는 ‘מִיץ אַפַּיִם’(분노를 짜냄, 잠 33:30) 또는 ‘כִּי אָפֵס הַמֵּץ’(빼앗긴 재물이 더 이상 없음, 사 16:4)과 유사한 표현으로, 짜내다, 압출하다는 의미를 가진다. 이는 도살한 부위를 제단 벽에 눌러 피를 짜내어 아래로 흘러내리게 하는 것을 의미한다.
- 비틀고…태워…부어져야 한다(וּמָלַק וְהִקְטִיר וְנִמְצָה): 이렇게 말하는 것이 가능한가 - 그가 제물을 불사른 후에 그 피를 짜낸다는 것이 과연 맞는가? 그럴 수 없다. 오히려 이 구절은 이렇게 암시하는 것이다: 머리와 몸을 따로 불사르듯이, 머리를 비트는 절차 또한 따로 이루어진다. 그러나 구절의 단순한 의미에 따르면, 이는 문장의 어순이 뒤바뀌어 있는 것이다. 즉, 그는 먼저 머리를 비틀어 제거한 후 그것을 불사르고, 그에 앞서 이미 피가 짜내어졌어야 한다는 뜻이다.
16 그리고 모이주머니를 그 내용물 중에서 떼어 제단 동쪽 옆 재 버리는 곳에 던져야 한다.
- 모이주머니(מֻרְאָתוֹ): 이는 배설물(רְעִי)이 있는 부위, 즉 모이주머니(곡낭)를 의미한다.
- 그 내용물 중(בְּנֹֽצָתָהּ): 이 표현은 ‘그 내장과 함께’라는 의미이다. 여기에서 נוֹצָה는 혐오스러운 것을 의미하며, 이는 “그들이 혐오스러워(נָצוּ) 비틀거렸다”(애 4:15)는 구절과 같은 의미이다. 온켈로스도 이 표현을 ‘בְּאוּכְלֵהּ’(그 소화된 음식과 함께)로 번역하였으며, 이것은 아바 요세이 벤 하난의 해석이기도 하다. 그는 말하길, 사람이 모이주머니와 함께 위장을 꺼낸다고 하였다. 하지만 우리의 (복된 기억의) 랍비들은 이렇게 설명하였다: 사람은 칼로 굴뚝처럼 곡낭 주변의 피부를 원형으로 잘라내고, 그와 함께 껍질에 붙은 깃털(נוֹצָה)을 제거한다. 동물 올림제의 경우, 그 동물은 주인의 여물통에서만 먹기 때문에, 성경은 “그 내장과 다리를 물로 씻고… 불살라야 한다”(레 1:13)고 말한다. 그러나 새의 경우, 그것은 훔친 곡식이나 타인의 밭에서 먹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성경은 이에 대해 “그 내장을 제거하라”고 명령한다.
- 제단 동쪽 옆(אֵצֶל הַמִּזְבֵּחַ קֵדְמָה): 즉, 제단 경사로의 동쪽 편을 의미한다.
- 재 버리는 곳(אֶל־מְקוֹם הַדָּֽשֶׁן): 즉, 이는 매일 아침에 바깥 제단에서 제거한 재, 그리고 안쪽 제단과 등잔대(메노라)에서 제거한 재를 쌓아두는 장소를 의미한다. 이 모든 재는 기적적으로 그 자리에서 땅이 삼켜 버렸다.
17 그것을 완전히 나누지 말고, 두 날개 사이로 찢고, 그 제사장이 제단의 불 위에 있는 나무들 위에서 태워야 한다. 그것이 올림제니 하쉠께 기쁜 향기인 사르는 제사다.
- 찢고(וְשִׁסַּע): ‘שִׁסּוּעַ’(찢어 가름)이라는 용어는 손으로 행할 때에만 사용되는 표현이다. 이와 유사하게 성경은 삼손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가 어린 사자를 새끼 염소 찢듯이 찢었다(וַיְשַׁסְּעֵהוּ)”.(삿 14:6)
- (두) 날개로(בִכְנָפָיו): 즉, 깃털이 여전히 붙은 채로, 곧 그 깃털을 뽑을 필요 없이 그대로 제단에 올린다는 의미이다.
- (두) 날개로(בִכְנָפָיו): 여기에서 말하는 것은 실제 깃털(נוֹצָה)을 가리킨다. 그러나 누구나 알다시피, 일반 사람이 깃털이 타는 냄새를 맡으면 역겨워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면 왜 성경은 “제사장은 그것을 불살라야 한다”고 말하는가? 그 이유는, 제단이 가난한 자의 제물로도 만족해 보이게 하고, 그 제물이 제단을 아름답게 장식하는 것처럼 보이게 하기 위함이다. 비록 그 냄새는 혐오스러울지라도, 하나님께서는 마음을 보시며, 가난한 자의 정성과 희생도 귀하게 여기신다.
- 나누지 말고(לֹא יַבְדִּיל): 즉, 그 제물을 완전히 두 조각으로 나누는 것이 아니라, 등 쪽에서부터 갈라서 펼치는 방식으로 찢는 것이다. 그리고 성경은 새에 대해서도 “향기로운 제물(רֵיחַ נִיחוֹחַ)”이라 말하고, 짐승에 대해서도 동일하게 “향기로운 제물”(레 1:9, 13)이라 말한다. 이는 다음을 가르치기 위함이다 — 큰 제물을 드리는 자나 작은 제물을 드리는 자나, 그 제물이 하나님 보시기에 똑같이 기쁘며, 오직 그 마음을 하늘(하나님)을 향하여 바치는가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