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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렛(ד) - 다쿠르(דָּקוּר): 찔린 자(Pierced)

by 베이트 미드라쉬 2025. 5. 6.
그들이 나 곧 자기들이 찌른 나를 바라보고 사람이 자기 외아들을 위하여 애곡하듯 그를 위하여 애곡하며 사람이 자기의 처음 난 자를 위하여 몹시 슬퍼하듯 그를 위하여 몹시 슬퍼하리로다.(슥 12:10)


잘 알려진 구절 “그들이 나 곧 자기들이 찌른 나를 바라보고 사람이 자기 외아들을 위하여 애곡하듯 그를 위하여 애곡하며 사람이 자기의 처음 난 자를 위하여 몹시 슬퍼하듯 그를 위하여 몹시 슬퍼하리로다.”(슥 12:10)는 메시아의 이름으로서 ‘찔린 자’(dakur)를 이끌어낸다. 이 예언은 매우 중요한 인물의 죽음을 분명히 언급하고 있으며, 유대 전승에서는 이 인물을 메시아 벤 요셉(요셉의 아들 메시아)으로 해석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스가랴는 다른 곳에서도 메시아 벤 요셉에 대해 언급하고 있지만, 이 구절만으로도 두 메시아 개념이 도출될 수 있다. 부활이라는 개념을 잠시 제쳐두더라도, 첫 번째 메시아가 ‘찔렸다’는 표현처럼 실제로 죽는다면, 메시아적 희망이 무효가 되지 않으려면 반드시 또 다른 메시아가 그 뒤를 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메시아 벤 요셉이 언제 죽는지에 대해서는 다양한 해석이 있지만, 가장 일반적인 이해는 그가 마지막 전쟁인 곡과 마곡의 전쟁에서 죽는다는 것이다.

메시아가 왜 죽어야 하는지를 이해하려는 시도는 매우 흥미롭다. 마지막 때에 메시아 벤 요셉이 죽는다는 전제를 바탕으로, 탈무드의 한 본문은 메시아 벤 요셉에 대한 두 가지 상반된 견해를 제시한다. 첫 번째 견해는 그의 죽음을 악한 경향성(충동), ‘예쩨르 하라(yetzer hara)’의 제거를 상징적하는 것으로 이해한다. 이는 마지막 전쟁이 의로움의 시대에 일어난다는 점에 근거한다. 반면, 다른 견해는 문자적인 접근을 취하여 메시아가 실제로 육체적인 죽음을 맞이할 것이라고 이해한다(b. Sukkah 52a).

루블린의 랍비 짜독 하코헨(Rabbi Tzadok HaCohen)은 이러한 상반된 견해들을 조화시키려 시도하며, 매우 흥미로운 결론에 도달한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메시아 벤 요셉은 아말렉의 모든 흔적을 지워버리는 자이며, 완전한 정결함을 지닌 자로서, 마지막 때에 곡과 마곡의 손에 의해 죽임을 당한다… ‘그들이 찌른 그를 바라보리라’는 구절은 문자 그대로 이스라엘이 그를 찔렀다는 의미이다. 법적으로는 그가 죽을 만한 이유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세대가 정결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는 죽임을 당해야 했으며, 이는 이스라엘 백성을 위한 속죄의 목적이었다.”(Poked Akarim, letter hei) 랍비 짜독은 이어서 설명한다. 메시아 벤 요셉의 죽음은 단지 이스라엘의 대적 아말렉의 모든 흔적을 제거하고, 이스라엘을 위해 속죄할 뿐 아니라, 그 죽음을 통해 악한 경향성도 함께 제거된다고 한다. “그리고 그를 죽임으로 인해 이스라엘 백성 모두의 마음에서 악한 경향성(충동)이 죽임을 당하게 되는 것이다.”(Poked Akarim, letter hei)

이 해석은 이스라엘의 구속이 두 단계에 걸쳐 이루어져야 한다는 이해에 기반한다. 먼저 등장하는 메시아는 찔리고 ‘패배한’ 메시아로, 이는 승리하는 메시아가 등장할 무대를 마련하기 위함이다. 겉보기에는 이 요셉의 아들 메시아가 완전히 실패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의 죽음은 실제로 이스라엘 백성의 마음을 다윗의 아들 메시아를 받아들일 수 있도록 준비시키는 역할을 한다. 요셉의 아들 메시아의 죽음이야말로 결국 두 메시아, 즉 성격상 전혀 다른 이 두 인물이 사실은 서로 분리될 수 없는 존재임을, 다시 말해 본질적으로 하나의 동일한 실체의 두 가지 양상이라는 것을 민족적으로 인식하도록 이끄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