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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시아 사상(Messianic insight)/쯔비 사단: 숨겨진 빛, 유대 문헌 속 메시아의 이름

헤트(ח) - 하모르(חֲמוֹר): 당나귀(Donkey)

by 베이트 미드라쉬 2025. 6. 16.

랍비 느헤미야는 이렇게 말한다. “‘소’는 요셉을 가리킨다. ‘그의 영광은 그의 수소의 첫 새끼 같으며’(신 33:17)라고 했기 때문이다. … 그리고 ‘나귀’는 메시아 왕을 가리킨다. ‘그는 겸손하사 나귀를 타시되’(슥 9:9)라고 했기 때문이다.” (Midrash Tanchuma B, Vayishlach 5)

현대인의 귀에 ‘나귀’(chamor)라는 이름은 메시아에게 어울리지 않는 모욕처럼 들릴 수 있다. 그러나 성경적 관점에서 보면, 이 이름은 오히려 큰 찬사이다. 예를 들어, 야곱은 자신의 아들 잇사갈을 “건장한 나귀”(창 49:14)에 비유하며 축복하였다. 이 축복은 후에 잇사갈 지파가 지닌 독특한 예언적 재능으로 실현되었다(대상 12:33[32]).* 또한 나귀의 전설적인 지혜는 발람의 나귀 이야기를 통해 찬란히 드러난다.

메시아와 관련하여 ‘비범한 나귀’에 대한 단서는 모세에 대한 독특한 구절에서 찾아볼 수 있다. “모세가 자기 아내와 아들들을 데려다가 나귀에 태우고 이집트 땅으로 돌아갔으며”(출 4:20). 온 가족이 하나의 나귀에 타고 있다는 이 특이한 장면을 두고 라쉬는 이렇게 주석한다. “나귀에 태우고—그 특별한 나귀이다. 이것은 아브라함이 이삭을 제물로 바치려 할 때 안장을 얹은 그 나귀이며, 바로 그 나귀를 타고 메시아 왕이 나타날 것이다. 이는 ‘그는 겸손하사 나귀를 타시되’(슥 9:9)라고 한 것과 같다”(Rashi, 출 4:20 주석).

스가랴의 예언은 메시아에 대해 말하는 것으로 이해되어 왔다. 라쉬는 이 구절에 대해 다음과 같이 주석한다.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나니’—이는 오직 메시아 왕을 가리키는 것으로밖에 해석될 수 없다”(Rashi, 슥 9:9 주석). 또한 ‘나귀’에 관한 또 다른 주석은 야곱의 말, “내게 소와 나귀가 있나이다”(창 32:5, 직역)에서 찾아볼 수 있다. 야곱에게는 많은 소와 나귀가 있었음에도 왜 단수형으로 표현했는지를 미드라쉬는 질문한다. 이에 대해 랍비 느헤미야는 이렇게 말한다. “‘소’는 요셉을 가리킨다. ‘그의 영광은 그의 수소의 첫 새끼 같으며’(신 33:17)라고 했기 때문이다. … 그리고 ‘나귀’는 메시아 왕을 가리킨다. ‘그는 겸손하사 나귀를 타시되’(슥 9:9)라고 했기 때문이다.”(Midrash Tanchuma B, Vayishlach 5) 이와 같이 해석될 때, 메시아와 나귀는 단순히 함께 등장하는 요소가 아니라 하나의 실체처럼 융합되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러한 이미지는 이사야의 환상에서 더욱 풍성하게 확장된다. 그는 “두 명의 마병이 탄 병거와 나귀 병거와 낙타 병거를 보고”(사 21:7)라고 말한다. 이를 종말의 날에 관한 예언으로 이해한 또 하나의 미드라쉬는 다음과 같이 해석한다. “‘나귀들의 병거’—이는 메시아를 가리킨다. ‘낙타들의 병거’—이는 느부갓네살이다. 이는 성전이 파괴된 날, 메시아 왕이 태어났기 때문이다. ‘레레바논이 강한 자로 말미암아 쓰러지리라.’(사 10:34)고 하였고, 곧이어 ‘이새의 줄기에서 한 막대기가 나며’(사 11:1)라고 하였기 때문이다”(Aggadat Breshit 68).

따라서 메시아에게 붙여진 ‘나귀’라는 이름은 그를 특징짓는 놀라운 겸손을 상징한다. 이 작고 온순한 동물은 율법상 ‘부정한’ 짐승으로 분류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의 출애굽 구속 사건에서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역할을 맡았다. 왜냐하면 이스라엘 백성은 나귀에 그들의 필수 소지품들을 실었기 때문이다(Pesikta Zutrata, Exodus 13). 그리고 바로 이 나귀를 통해 메시아는 왕으로서 드러나게 된다.

* 잇사갈 자손 중에서 때를 깨닫고 이스라엘이 마땅히 행할 바를 아는 자들 곧 그들의 우두머리가 이백 명이었더라. 그들의 모든 형제들이 그들의 명령을 따랐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