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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시아 사상(Messianic insight)/쯔비 사단: 숨겨진 빛, 유대 문헌 속 메시아의 이름

알레프(א) - 아르예(אַרְיֵה): 사자(Lion)

by 베이트 미드라쉬 2025. 3. 25.
유다는 사자 새끼로다. 내 아들아, 네가 탈취한 것을 떠나서 위로 올라갔도다. 그가 엎드리고 웅크린 것이 사자 같고 늙은 사자 같으니 누가 그를 깨워 일어나게 하리요?”(창 49:9)


메시아의 이름으로서의 ‘사자’(aryeh, אריה)는 야곱이 그의 아들 유다에게 준 축복에서 유래한다. “유다는 사자 새끼로다. 내 아들아, 네가 탈취한 것을 떠나서 위로 올라갔도다. 그가 엎드리고 웅크린 것이 사자 같고 늙은 사자 같으니 누가 그를 깨워 일어나게 하리요?”(창 49:9) 유다에 대한 이 축복은 ‘실로’(Shiloh, שִׁילֹה)(창 49:10)라는 표현 때문에 메시아적 예언으로 가장 널리 알려져 있으며, 유대 전통은 이 ‘실로’를 메시아로 해석해 왔다. “이 예언이 언제 성취될 것인가? 실로가 올 때, 곧 메시아가 올 때이다.” (Bereishit Rabbah 98:9).

그러나 ‘사자’라는 명칭은 창세기 49장 9절 한 구절 안에서 세 번이나 반복되어 특별히 강조되고 있다. 히브리어에서 ‘사자’는 뉘앙스의 차이를 통해 새끼 사자(gur aryeh)에서 성장기 사자(aryeh), 그리고 완전히 성숙하고 위엄 있는 사자(lavi)로의 성장 과정을 나타낸다. 이러한 새끼 사자가 점차 성숙해지는 모습은 메시아가 오시는 방식에 대한 유대적 이해와 잘 들어맞는다. 그의 첫 번째 도래는 성숙하기 이전, 미완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유대 전통에서 이 메시야는 ‘요셉의 아들’이라 불리며, 요셉처럼 ‘죽임을 당하는’ 존재이다. 이후 ‘다윗의 아들’로서 나타나는 메시아는 완전히 자라난 사자로서, 만국을 다스리는 왕으로 드러난다. 위에서 인용된 같은 자료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유다는 사자 새끼로다’—처음에는 새끼처럼 제한된 권위를 가지지만, 마지막에는 사자 왕과 같다… 이는 만국 가운데 엎드려 있는 다윗의 아들 메시아 왕이며, 민족들 중 누구도 그를 일으킬 수 없도다.”

이 예언의 이미지들은 메시아의 정체성과 운명에 대한 복잡한 개념을 발전시키는 데 있어 여러 흥미로운 해석들을 낳게 되었다. 창세기 49장 9절은 번역될 때 그 모든 히브리어의 뉘앙스를 온전히 담아내지 못하기 때문에, 대부분 “먹잇감(탈취물)으로부터, 내 아들아(유다), 네가 올라왔도다”라고 번역되어, 여기서 말하는 ‘먹잇감(טֶרֶף)’의 정체는 모호하게 남는다. 그러나 히브리어 원문은 또 다른 해석 가능성을 열어준다. 곧, “내 아들 [요셉]의 먹잇감으로부터 네가 올라왔다”라는 식의 읽기가 가능한 것이다. 이는 유다가 요셉을 ‘죽이는 일‘에 참여하지 않았다는 점을 강조하며, 그가 유일하게 요셉의 살해에 가담하지 않은 인물임을 나타낸다.

이 두 가지 해석은 모두 왜 유다가 메시아의 계보를 잇는 축복을 받게 되었는지를 설명해 준다. 또한 요셉도 메시아적 인물로 간주되기 때문에, 유대 전통에서 왜 요셉의 아들 메시아가 죽임을 당하게 된다고 해석되었는지도 밝히게 된다. 더 나아가 성경 본문과 그 해석들에서 분명히 나타나듯, 야곱의 아들들이 자신들의 구속자의 실종에 일정 부분 책임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요셉’은 그것을 그들에게 책잡지 않으려 한다. “오직 당신들은 내게 악을 행하려고 생각하였으나 오히려 하나님은 그 일이 선이 되도록 계획하사 이 날과 같이 많은 사람을 살려 구원하게 하셨나니.”(창 50:20)라는 말씀은 그 점을 잘 보여 준다. 따라서 ‘유다의 사자’는 이스라엘을 삼키려는 존재가 아니라, 오히려 다른 맹수들로부터 이스라엘을 보호하는 자이다. 랍비 이츠하크 아브라바넬도 이 점을 강조하며 이렇게 말한다. “‘먹잇감으로부터, 내 아들아, 네가 올라왔다’는 말은 곧 네가 모든 포악함과 잔인함에서 자신을 거두었음을 의미한다. 네 도구는 ‘잔혹함의 도구들’(창 49:5)이 아니기 때문이다.”(아브라바넬 창 49:9에 관한 주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