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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시아 사상(Messianic insight)/쯔비 사단: 숨겨진 빛, 유대 문헌 속 메시아의 이름

달렛(ד) - 도드(דּוֹד): 사랑하는 자(Beloved)

by 베이트 미드라쉬 2025. 4. 30.
나의 사랑하는 자는 노루와도 같고 젊은 사슴과도 같으시니, 보라, 그분께서 우리의 담 뒤에 서서 창문으로 들여다보시며 격자창을 통해 자신을 보이시는도다.(아 2:9)


‘사랑하는 자’(dod)라는 메시아의 명칭은 다음 구절에서 발견된다. “나의 사랑하는 자는 노루와도 같고 젊은 사슴과도 같으시니, 보라, 그분께서 우리의 담 뒤에 서서 창문으로 들여다보시며 격자창을 통해 자신을 보이시는도다.”(아 2:9) 여기서 ‘사랑하는 자’는 이스라엘과 중동 전역에 서식하는 작은 영양인 가젤에 비유된다. (이는 산양과는 다른 동물이다.) 물론 자연스러운 의문은, 왜 메시아와 같은 숭고한 존재가 이런 작고 흔한 동물에 비유되는가 하는 점이다. 하지만 이 아름다운 동물을 잘 아는 사람이라면, 그것이 얼마나 민첩하고, 주변 환경과 얼마나 잘 어우러지며, 얼마나 빨리 나타났다가 사라지는지를 알고 있을 것이다. 흔하긴 하지만, 가젤은 순식간에 시야에서 사라지는, 붙잡기 어려운 존재다. 아가서에서 ‘사랑하는 자’는 바로 이런 특성을 지닌 존재로 그려진다. 그는 잠깐 보였다가 다시 사라지며, ‘산 위를 뛰고, 언덕 위를 뛰어넘는 자’(아 2:8)로 묘사된다.

바로 이 가젤의 포착하기 어려운 특성—곧 나타났다가 사라지고, 다시 나타나는 성질—이 ‘사랑하는 자’와 메시아를 연결해 준다. 메시아 역시 가젤처럼 나타났다가 사라지고, 다시 재현된다. 미드라쉬는 이 이미지를 더욱 풍성하게 해준다. “이스라엘이 거룩하신 분, 찬송받으실 그분 앞에서 말하였다. ‘우주의 주재시여, 주께서 우리에게 처음 오셨다고 하셨나이다. 나의 사랑하는 자는 노루 같으니이다.’ 이 노루가 나타났다가 다시 보이지 않듯이, 처음 구속자도 그러하나이다… 그리고 처음 구속자와 마찬가지로, 마지막 구속자도 그러하나이다.”(Numbers Rabbah 11:2)*

이스라엘의 첫 번째 구속자는 모세였다. 그는 히브리 노예를 구하려 애굽 사람을 처치함으로써 처음으로 구속자의 모습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이 첫 등장은 실패처럼 보였고, 그 결과 그는 광야에서 40년간 모습을 감추게 되었다. 이스라엘 백성의 시각에서 보자면, 그는 사실상 죽은 자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모세가 다시 등장했을 때, 그의 사명은 압도적인 성공으로 완수되었다. 바로 이 나타남, 사라짐, 재등장이라는 행위는 마지막 구속자인 메시아의 도래 역시 같은 패턴을 따를 것이라는 상징적 예표로 해석된다.**

더 명백하게, 사랑하는 자(דוד, dod)라는 명칭이 메시아를 가리킨다고 보는 근거는 다윗과의 연결성에 있다. 히브리어에서 ‘다윗’(דוד, David)과 ‘사랑하는 자’(דוד, dod)는 철자가 동일하며, 숫자 값(gimatriyah)도 둘 다 717이다. 이 점을 고려하면 이사야 4장 2절 - “그 날에 주의 가지가 아름답고 영화롭게 되리라”-에 대한 라닥(Radak)의 결론은 매우 자연스럽다. 여기서 ‘아름답다’는 말로 번역된 히브리어 쯔비(צבי, tzvi)는 ‘노루’ 혹은 ‘가젤’을 뜻하는 단어이기도 하다. 라닥은 이 구절을 다음과 같이 주석한다. “‘그 날에‘-이는 구속자가 올 때, 곧 다윗의 아들 메시아의 도래를 가리킨다… ‘아름다운’(tzvi)-이것은 또한 메시아에 대해 말한 것이다.” (라닥, 이사야 4:2 주석)

‘사랑하는 자’(dod)라는 명칭은 그 자체의 분명한 의미 - 곧 메시아가 하나님의 깊은 사랑을 받는 존재임 - 을 넘어서, 이 이름은 메시아와 이스라엘 사이의 복잡한 관계를 드러낸다. 그는 분명히 ‘사랑하는 자’이지만, 항상 환영받는 존재는 아니다. 때로는 오해받고, 거부당하며, 심지어 실패한 자처럼 보이기도 한다. ***

* 이 미드라쉬는 메시아를 첫 번째 구속자와 마지막 구속자라는 두 시점에서 조명하며, 그가 한 번은 모습을 드러냈다가 다시 사라지고, 정해진 때가 되면 다시 나타난다는 사상을 제시한다. 따라서 아가서에서의 ‘사랑하는 자’는 메시아의 도래, 은폐, 재림이라는 신비한 패턴을 상징하며, 그 기다림은 이스라엘 백성의 오랜 기대와 소망 속에 깊이 뿌리박혀 있는 것이다.
** 따라서 메시아도 처음에는 불완전하게 받아들여지거나 거부될 수 있지만, 그는 사라진 후 다시 나타나 모든 예언을 성취하고 온 세상을 구속할 자로서, 모세가 걸었던 길을 궁극적으로 완성하는 인물로 나타나게 될 것이다. 이는 탈무드적, 미드라쉬적 전통 속에서 ‘두 구속자’(모세와 메시아)를 평행구조로 이해하는 핵심 관점이다.
*** 메시아의 오심에 관한 상반된 구절에 대해 탈무드 산헤드린의 게마라는 다음과 평가한다. “랍비 예호수아 벤 레위는 메시아의 오심에 대한 두 가지 묘사 사이에 모순을 제기합니다.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늘 구름을 타고 인자와 같은 이가 나왔는데... 그에게 통치와 영광과 나라가 주어졌고... 그의 통치는 영원한 통치입니다."(단 7:13-14). 그리고 기록되어 있다: "보라, 너희의 왕이 너희에게 오시리니 그는 공의로우시며 승리하시는 분이시며 겸손하시고 나귀와 나귀의 새끼인 망아지를 타시리라"(슥 9:9). 랍비 알렉산드리는 이렇게 설명한다: 유대 민족이 구원을 받을 자격이 있다면 메시아는 하늘의 구름을 타고 기적적인 방법으로 오실 것이다. 그들이 구원을 받을 자격이 없다면 메시아는 나귀를 타고 낮게 오실 것이다.”(Sanhedrin 98a)